아... 음... 어쩌지.
카이사르는 별지기가 모두에게 하나씩 건네준 작은 선물 포장을 뜯지도 못 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선물은 파스텔톤 분홍색으로 포장이 되어 있었고, 금실이 들어간 빨간 리본으로 예쁘게 묶여 있었다. 카이사르는 책상에 살짝 던져 둔(마구 팽개칠 수는 없으니까) 상자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샅샅이 살펴보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도저히 가까이서 볼 용기가 나지 않았으니까.
음. 이상한데. 그렇잖아. 왜 이런 선물을 주는 거지? 갑자기? 음. 빨간 리본에 붙은 금실은 진짜 금은 아니겠고. 음. 가만 보면 다들 별지기한테 선물을 받은 것 같단 말이지? 근데 왜 그렇게 다들 들떠 있는 거야? 뭘 열심히 준비 하는 것 같던데. 돌멩이는 답지 않게 밤을 꼬박 세고 그래? 아. 진짜 모르겠네. 이상하네. 그냥 별지기한테 솔직하게 물어볼까. 평소의 답례라면서 준 건데, 내가 평소에 뭐 한 게 있었나?
카이사르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동안 벌인 일들을 하나 둘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마물들을 소탕하겠답시고 실수로 날려 먹은 비품들, 적당히 째려고 했다가 대장에게 잡히고 말았던 훈련 시간, 번번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가 기사단들에게 쿠사리를 먹은 적도 있었고, 그리고...... 부대장......
야! 별지기! 하나도 모르겠다고!
떠올리기 싫은 부끄러운 흑역사는 몇 번이고 카이사르의 머릿속에 악몽처럼 나타났다. 똑똑똑. 네, 누구세요? 안녕, 나는 너의 흑역사야.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한 카이사르는 머리를 몇 번이고 헝클어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하다. 이건 음모야.
그렇잖아! 신세? 신세 졌다고? 답례라고? 무슨 답례인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아, 진짜 이거 받아도 되는 건가?!?
울상이 된 얼굴을 마른세수로 몇 번이고 씻어낸 다음 차분하게 다시 기억 속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렇잖아. 여기, 피스메이커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잖아. 나는 그냥, 날치기에 사기꾼이었지. 물론 지금은! 번듯한 사람이 되었다고......할......수 있나? 어쨌든! 예전 보다는 괜찮은 모습이지 않아, 이거? 음. 그러면 이런 선물 받아도 되는...... 아니, 아니지. 잠깐만. 옛날에 힘들게 살던 때를 생각해보라고! 그래. 사람은 쉽게 믿으면 안 되는 거야. 이거, 어떤 음모일지도 몰라.
카이사르의 망상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점차 심해졌다. 이제는 피스메이커에서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었는데도, 도저히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망상을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이 장면을 봤다면 밖에 나가서 머리라도 식히고 오라고 말해줬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 혼자였다.
아! 진짜! 모르겠다니까아아아아아아!!!!!
야! 시끄러워, 물방개!
뭐, 이, 돌멩이가!!!
굳게 잠겨 있던 카이사르의 방문을 힘으로 벌컥 뜯어낸 것은 늘 그렇듯 아주라였다. 아주라는 카이사르 방문 수리가 자기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시끄럽게 괴로워하고 있는(그러니까 아주라에게 방점은 ‘시끄럽게’에 있다) 카이사르를 참아줄 마음은 없었다. 란더는 아주라의 뒤에서 곤란한 듯 몸을 웅크리고 카이사르를 살폈다.
뭐가 문제야, 물방개!!
야! 미쳤어? 방문 어쩔거야!
너가 너무 시끄럽잖아! 그러니까 뭐가 문제냐고, 물방개! 이 멍청이가, 오늘 같은 날에 말이...... 너 아직도 별지기님이 주신 초콜릿 안 뜯은 거야?
어?
아주라는 멍한 얼굴로 책상 위에서 잘못 도착한 택배처럼 어색하게 놓여 있는 선물 상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란더도 그제야 카이사르가 아직도 선물을 뜯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카이사르. 별지기님이 주신 거 맛있으니까 먹어봐.
어? 맛있다고?
으. 응.
이거...... 먹는...... 거라고?
응.
잠깐, 란더. 말해주지 말자. 너가 직접 열어봐, 물방개!
돌멩이가 진짜.
열어보라니까? 그냥 그대로 둘 거야?
아주라는 카이사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베푸는 호의를 받아 들이는 데에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용기. 카이사르는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 아직 자신이 없었다. 카이사르는 어물어물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음...... 그렇다 해도 말이지. 다른 애들은 맛있는 걸 준다 해도 말이지. 나 같은 놈팡이한테 이런걸......
야! 빨리 안 열고 뭐해!
아, 진짜, 알았다니까, 이 쪼꼬만 돌멩이 자식아!!!
둘 다 진정해!
카이사르는 애써 둘을 말리고 있는 란더를 바라보며 겨우 선물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주라는 카이사르가 선물을 열어볼 때까지 방문 앞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아. 짜증나는 돌멩이. 진짜. 떨리는 손으로 리본을 풀었다. 덜덜거리는 손으로 박스의 분홍색 종이 포장을 풀었다. 하도 손이 떨렸기에 포장을 뜯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성격 급한 아주라가 그 새를 참지 못 하고 호통을 쳤다.
야! 진짜, 얼른 풀어보라니까, 물방개!!!!
이 돌멩이가!!!
카이사르. 봐!
란더가 급하게 외친 한 마디에 카이사르는 깜짝 놀라 상자 안을 바라보았다. 음. 음? 이건......?
초코......다......
그래서 말이지, 이건 말이야, 어? 이 카이사르님이 직접 고른 거라고. 어? 알겠어? 이런 건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지. 자. 한 번 열어봐!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고 그가 한 말이다. 음. 그래. 이 포장. 그래도 고민해서 고른 것 같다. 반짝이는 노란색 리본으로 묶여 있는 선물상자. 상자는 갈색 종이 포장지로 덮여 있었다. 이건 솔직히, 예상하지 못 했다. 카이사르가 선물을 해 줄 거라고는? 조금 기쁜 마음에 선물을 풀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초조한 얼굴로 내 표정을 살피고 있는 카이사르를 애써 바라보지 않으며. 포장을 풀자, 상자 안에 있는 것은
초코......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한 얼굴을 한 카이사르가 활기차게 말했다.
짜잔! 어때, 근사한 초콜릿이지? 네 거야! 어? 왜 멀뚱히 서 있어? 하나 먹여줄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 하고 하하 웃어버렸다. 카이사르는 붉어진 얼굴로 투덜거리며 말했다.
아, 왜! 뭐, 뭐야!
아니요. 감사해요! 정말 좋은 선물을 받았어요.
그......그래? 뭐! 그럼 다행이네! 그, 저번에, 초콜릿에 대한 보답이라고.
보답.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 보답.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보답 해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기쁜 건 사실이었다.
고마워요.
에.....아니.....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 카이사르가 뒷목을 긁으며 말했다. 그래. 그에게도 필요할 것이다. 그의 곁에 마음을 선물한 사람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선물 받은 마음에 보답을 할 정도의 용기가 정말,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년에도 기대할께요?
어?
웃으며 돌아선 내 뒤에 남은 카이사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곧 알테다. 우리에게는 내년이 있다.
야! 기대해라! 내년에는 내가 먼저 줄거니까!
아. 맞는 말이다. 내년에는 그가 먼저, 줄 것이다.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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