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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비스

[전력][아주라]조개 빛깔 바다

by ___hashi___ 2020. 2. 1.

약간의 이벤트 스토리 변형이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피해주세용


 

 

바다.

그곳은 정말 바다였다.

아주라는 잠시 숨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물을 보았다. 양 옆으로도, 저 멀리로도 끝이 없는 물. 그렇구나. 이건, 끝이 없는 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정말 너무 넓구나. 물이라는 말로 전부 담기지 않는구나. 이걸 바다라고 부르는구나.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 여기까지 가져 온 조개껍데기를 꺼냈다. 작은 두 손 안에서 반짝이고 있는 조개껍데기를. 주변에서는 가디언 대원들이 큰 소리로 떠들며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주라는 천천히 신발을 벗고 까슬거리는 모래를 밟았다. 흙밭을 맨발로 걷는 것과는 다르구나. 바다의 물기를 먹은 모래는 축축한 듯 하다가도 금방 발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눈앞에 있는 것은 바다. 맑은 물과 조개 껍데기처럼 빛나는 해안선. 그래, 저걸 해안선이라고 부르는구나.

모든 게 처음인 아주라는 꿈꾸듯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차가운 물이 발에 닿자 조금 겁이 나 뒷걸음질을 쳤다. 몇 번의 파도가 밀려왔고, 발등을 찰싹 때리는 바닷물에 점차 익숙해졌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아주라는 웃을 수 있었다. 내가 알던 세계와는 너무 다른 이곳.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구나.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아주라에게는 그 모든 게 너무 놀라웠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도, 뭐든 시간을 들여야 친숙해지고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는 사실도.

신전에서 바다를 그리던 시간을 떠올렸다. 매일 밤마다 하늘에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보석같은 별을 보며 바다도 저렇게 아름다울까 혼자 상상했던 시간을. 곁에 없는 가족과 함께 바다에 가보았을까 싶었고, 그럴때면 조용히 울음을 참고 더 나은 내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다독이며 잠들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바다. 갇혀 있던 새장을 열고 나온 새처럼, 아주라는 활개를 치며 대원들과 물장난을 쳤다.

야, 돌멩이! 좀 작작 해!

뭐! 시작은 너가 먼저 했잖아, 물방개 주제에!

그... 그만해... 둘 다...

내가 먼저 시작을 했어도, 너, 그렇게 흥분하다가는 좀 있다 지쳐서 밥도 못 먹는다고? 어? 알겠...... 야, 너 우냐?

아... 아주라?

어...?

작은 어깨 위로 지는 해의 밝은 실루엣이 길게 늘어졌다. 분명 기쁘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입 밖에 낼 뻔한 말. 엄마. 아주라는 작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모두가 있었다. 아빠같은 대장님도 있었고, 상냥한 부대장님도, 대원들도, 모두가 있었는데, 가장 소중하게 그리던 꿈인 가족만큼은 그녀 곁에 없었다. 언젠가는 바다에 와 보고 싶었다. 작은 새장을 열고 날아가는 것은 그녀의 꿈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는 바다.

나는, 나는......

아무리 입을 막아도 울음이 멎지를 않았다. 바다에 왔기 때문에 울음이 나왔다. 이제야 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손이 닳도록 기도하던 시간들이 이렇게 보답을 받았다고, 그러니까, 가족이 곁에 없어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간절한 마음이 이렇게 보답을 받았으니까. 아주라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 하는 이유 때문에 계속 울었다. 우는 사람을 달래는 방법 같은 건 도저히 모르는 카이사르와 그래도 카이사르보다는 잘 달랠 줄 아는 기특한 란더를 앞에 두고. 란더는 아주라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축하해. 여기, 바다야.

응. 맞... 맞,아!

아주라는 란더의 말에 겨우 울음을 멈추고 숨을 힘겹게 들이쉬었다. 꿈을 이룬다는 건 이렇게 벅찬 거구나.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어정쩡하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카이사를 보다 못 한 나인이 왔고, 곧이어 리온까지 왔다. 나 때문에 이렇게 다들 신경써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괜히 아주라는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런다고 눈물이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라.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큰 손. 따뜻한 손. 아빠의 손도 이렇게 커다랗고 따뜻할까? 아주라는 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잘 담아두렴. 언젠가 가족들에게 말해줄 수 있게.

가족이라는 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아주라는 기어이 울음을 참았다. 내일은 여전히, 오늘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리고, 여기는, 바다였으니까. 리온의 낮은 음성이 잠처럼 아주라에게 밀려들었다.

네!

야. 물방개, 씨, 사람 놀래키고 그러냐.

자, 모두 손 씻으세요! 이제 저녁 먹을 때가 됬으니까요!

긴 저녁의 그림자가 바다 위로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곳은 바다. 어느 작은 소녀가 오래도록 그리던 꿈. 긴 꿈이 여전히 펼쳐져 있는 저녁. 반짝이는 조개가 그려 넣은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