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말해 보거라! 이 몸이 누구-
가자, 제이드.
팔 힘이 강한 오든은 제이드의 손목을 낚아채고 사람들 무리를 가볍게 뚫으며 나왔다. 오든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향해 상냥하게 웃으면서. 오든에 비해 몸집이 작은 제이드는 그가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으. 귀족으로서의 품위가 다 망가지잖아! 한창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는 중인데!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자 사람들은 제이드보다 오든에게 더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였다. 뭐지. 보석을 나눠준 건, 나잖아! 제이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지나쳤다. 곧이어 인파를 뚫고 사람이 없는 골목길에 겨우 당도하자, 오든은 그제야 제이드를 놓아주었다.
제이드. 보석은 아무 때나 뿌리는 게 아니라니까!
흠! 되었도다. 너야 말로 방해가 되는구나!!
제이드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리며 툴툴댔다. 부잣집 도련님. 항상 제멋대로 구는 이 도련님을 다루는 것은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오든이 알고 있기로는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단순한 표현만으로 그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든은 조금 더 잔소리를 하려다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제이드. 이번에는 넘어가지만, 다음에는 또 그러면 안 돼. 우리는 순찰을 하러 온 거라고. 가디언의 창설 목표는 기억하고 있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게 아니라, 평화와 질서를 주는 거야.
내가 언제 혼란을 줬다고 그러느냐! 아까 순찰을 돌던 곳은 가난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 아니더냐! 보석이야 나에게는 얼마든지 있는걸, 그까짓 보석 몇 개 나눠준다고 혼란이 가중될 리가--
제이드!
아, 시끄럽도다! 알겠으니 가자꾸나.
성이 난 제이드는 색색거리며 뒤도 안 돌아보고 멋대로 골목 사이로 빠져나가버렸다. 오든은 이마에 손을 올리고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알고는 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보석을 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철없이 구는 듯해도 귀족답게 평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제이드는 세상이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세상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제이드? 어디 있어 제이드?
제이드가 돌아 나간 골목길을 걷던 오든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편에 놓여 있는 벤치를 보았다. 그 벤치에 힘없이 앉아 혼란스러운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제이드도 같이.
음? 뭐라고?
큼큼. 다시 말하게 만들다니! 샤인 디디에를 아느냐 물었도다.
제이드는 커다란 눈을 불안하게 움직이며 괜히 코를 긁적였다. 가디언 중에서는 도저히, 이 피스메이커의 대장처럼 제대로 말해줄 사람은 없으니까. 이 남자는 내가 물어보는 모든 것을 전부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리온에게서 한동안 답이 없자 제이드는 답답한 마음에 리온을 쏘아보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해줄 말이 없는 것이냐?
아니, 뭐...... 미안. 생각을 좀 하느라. 그런데, 왜 그걸 나한테 묻는 거지?
그야. 자네는 내가 물어보는 것마다 전부 다 알고 있지 않느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정말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이냐?
제이드는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두 눈이 반짝였다. 그 눈을 보자 리온은 한도 끝도 없이 절망스러워졌고. 이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음. 나는 뭐든지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야. 제이드, 너가 물어보던 걸 우연히 알고 있었던 것뿐이니까.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아줘.
엣, 그렇지만 물어보는 것마다 알고 있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테다!! 음. 그러면, 그래. 그...... 혹시 말이다...... 그......
뭔데? 내가 알고 있는 거라면 말할 테니까. 물어봐.
유난히 뜸을 들이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데에 여념이 없던 제이드는 주변에 누가 없는지 샅샅이 살피다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리온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느냐? 보석......이라던가? 그런데 보석을 썩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그...... 그래 그렇지. 사람들이 왜 오든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느냐?
아. 그런 건가. 리온은 그제야 왜 샤인에 대해 궁금했는지, 왜 이렇게 유난히 뜸을 들였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고민하고 있구나, 샤인, 아니, 제이드 디디에.
나는 오든이 아니니까 말이야.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래. 보석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사람들이 오든을 좋아하는 건, 오든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봐 줄 수 있는 녀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음 말이냐?
응. 그렇겠지? 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준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힘이 될 테니까. 내 생각에는, 그래. 그건 보석보다 강한 거라고 생각해. 마음을 보는 건.
제이드는 골몰히 생각에 잠겨 들어갔다. 그래. 오든도 그렇고, 여기, 피스메이커의 대장 리온도 그렇다. 생각해보니 이 두 사람과 있을 때면 마음이 편하기는 했지. 그건, 그런가! 내 마음을 봐주고 있었다는 소리인가! 그건 보석보다도 강한 거라고? 리온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하자, 제이드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샤인은? 샤인이었던 나의 과거에는? 샤인이었던 나에게도 가능했을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봐 준다는 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본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말해 보거라! 사람의 마음을 본다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제이드가 초조한 듯 리온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리온은 그런 제이드가 안쓰러워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을 본다는 건 어느 날 갑자기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여전히 샤인의 그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건가. 제이드는 슬슬 떼를 쓰기 시작했다.
빨리! 얼른 말해보거라! 어떻게 하면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냐!
자, 잠깐! 그건 하루아침에 가능하게 되는 그런 건 아니라고!
리온의 말에 낯빛이 어두워진 제이드는 그제야 리온의 팔을 놓았다. 리온은 말이 없어진 제이드의 얼굴을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기죽을 필요는 없어.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하는 거야. 너. 너무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지 않아도 좋아.
짐?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제이드는 짐짓 시치미를 떼고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며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리온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너.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
뭐, 뭘 말이냐! 알고 있도다!
리온의 말에 깜짝 놀란 제이드는 황급히 그 자리를 도망쳐버렸다. 얼마나 달음박질을 했는지 모른다. 한참 도망을 친 후에야 숨을 고르며 곰곰이 생각했다. 샤인에 대해 듣지 못했구나. 리온이 했던 말.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고? 도대체가, 뭐가 괜찮다는 말인 거야.
가끔 제이드는 과거의 흐릿한 기억이 꿈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꿈같다고. 그런데도 샤인이라는 남자는 과거의 그림자가 되어 끊임없이 제이드의 생활을 뚫고 들어왔다. 마치, 쌍둥이 같다. 항상 내 곁에 같이 다니는 나와 똑같이 생긴 남자. 그러나, 쌍둥이 형제가 아무리 똑같아도 결국 다른 사람인 것처럼, 제이드가 느끼기에 샤인은 결국, 지금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지금 그대로 괜찮다니.
제이드는 리온이 했던 말은 몇 번이고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지 않았다. 잃어버린 과거가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 쌍둥이 형제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는, 아득하게 멀었다.
음. 너무 피곤해. 일단 자야겠군. 그래. 리온. 그 자가 그렇게 말했지. 한 번에 하나씩 하라고...그러니까...음...내일은 보석 없이......가보자...... 사람들 눈...을 보고......이야기를......그리고......
밀려오는 잠에 잠긴 제이드는 설핏 꿈을 꾼 것도 같았다. 등불. 따뜻한 등불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등불을 들고 있는 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보라색의 눈. 과거로부터 걸어온 쌍둥이는 등불을 제이드에게 건네주었다. 제이드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우선은 뒤를 돌았다. 쌍둥이가 등을 밀어주었고, 걸었다. 무작정, 앞으로. 밝게 타오르는 등불을 높이 들어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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