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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첫문장] 바다로 돌아가는 인어의 바다

by ___hashi___ 2020. 5. 1.

냐냐냨 나는 나는 갈끄야 연못으로 갈끄야

그건, 그 인어가 우리를 보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인어. 그렇다. 그건 분명 인어였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인어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인어가 분명했다.

물고기의 몸통에 사람의 다리를 가진, 인어.

인어를 처음 발견한 곳은 강원도 산골의 계곡이었고, 농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아연한 얼굴을 하며 죽이려고 했다는 것 같다. 물고기의 몸통에 사람의 다리를 가진 이 이상한 돌연변이는 그 자체로 불길함의 상징처럼 보였으니까. 거기다 말을 하기까지 했다. 불완전한 말투였다고 해도, 논리에 맞는 문장을 말했다. 그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 랩실의 연구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이 이상한 말을 하는 인어는 랩실의 수조 안에 있다.

이십 평 남짓한 랩실 안에 인어를 위한 수조는 오 평 남짓한 크기였다. 랩실의 사 분의 일의 면적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이 수조는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연구실의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이 수조 때문에 연구원들은 더 다닥다닥 좁혀 앉아야 했고 연구를 위한 기계들도 갈 곳을 잃어 복도에 처량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인어에게 관심을 보이던 교수는 지금 다른 연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어를 통해 알아낸 결과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연구를 해도 어떻게 이런 돌연변이가 가능한지 알아낼 수가 없었고 어떻게 저런 불완전한 말을 하는지 알아낼 수도 없었다. 인어의 말에 대해 연구하려면 차라리 언어학자를 부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수는 어느 누구와도 협력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연구원들만 좁아진 랩실에서 괴로워했다. 다들 크고 작은 현기증을 앓았고 나는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바다 사진과 조개껍질 사진을 선반에 붙여 놓았다. 넓은 바다 사진이라도 보면서 정신 차리려고.

어쨌든 우리는 인어의 수조 안에 알맞은 염분을 맞춰주며 가끔 작은 물고기를 밥으로 줬고, 말도 걸어 보았다. 그러나 대화가 거의 가능하지는 않았는데, 인어가 거의 매일 하는 말은

나는 나는 갈끄야 연못으로 갈끄야

그거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랩실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그 인어는 끊임없이 연못으로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 인어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백색소음이라도 듣는 사람들처럼.

나는 랩실의 가장 막내.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인어는 사실상 내가 돌보고 있었다. 염분을 맞춘 것도 나고 그의 비늘을 채취한 것도 나고 그의 언어를 받아 적은 것도 나다. 사실, 다른 연구원들은 흥미 위주로 인어를 대한 것뿐 막내인 나는 교수 때문에라도 진지하게 인어를 연구해야 했다. 그리고 인어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만.

뉴뉴! 나는 나는 먹을끄야! 개구리! 개구리! 뉴뉴!

냨냐냐냐냨! 구름! 구름 뜬 거야! 구름!

뉴뉴! 조개? 조개! 조개? 바다로 갈끄야? 뉴뉴?

말은 대체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편이었고, 나는 대충 흘려들으며 맞장구를 쳐줬다. 응, 그래, 맞아 개구리 줄게, 맞아, 구름 뜬 거야, 맞아, 바다 가고 싶다, 정말, 언제까지 그 짓을 해야 하는지 답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듣고 만 것이다. 나에게 인어가 해 준 말. 친구. 친구라고 말했다. 나에게

친구! 친구야! 친구! 친구! 밥!

밥을 주며 물에 젖어 있는 인어의 눈을 바라보았다. 결국 교수는 이 인어를 포기했고 문제가 많은 연구물을 안락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인어는, 나에게 친구라고 말했다. 별 수 있겠는가? 난 친구 많다. 하지만 이 자식도 나한테 친구라고 말해주지 않는가? 그래서 시작한 것이다. 내가 주도가 되어 시작한 인어 탈출을.

 

도착한 곳은 인어가 살던 계곡. 이 시골에 연못이 어디라도 있겠지 싶었지만 정말 연못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겨우 데려온 곳이 여기. 어쩌면 이미 랩실 사람들은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 몰래 오느라 하늘은 깜깜했다. 핸드폰 불빛을 제일 낮게 켜고 계곡을 둘러보았다. 이제 인어를 보내줄 때다. 정든 친구, 인어를.

잘 가.

인어를 겨우 옮겨 놓으며 말했다. 인어는 물속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커다란 붕어 입을 뻐끔거리며 물었다.

친구! 친구! 같이!

아니. 나는 못 가. 나는 물에서 못 살아.

인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지 몸을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계속 재촉했다. 친구! 친구! 같이!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같이 갈 수가 없으니까, 너라도 가야 해. 나는 손을 흔들어줬다. 랩실을 열고 닫을 때 인어에게 했던 손 인사. 잘 있어. 잘 가. 인어는 멍하니 내 눈을 바라보다 얼른 말했다.

냐냨! 기다! 려! 뉴!

그리곤 얼른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좁은 계곡물을 솜씨 좋게 돌아다니던 인어가 입에 물고 온 것은, 작은 조개껍질. 인어는 나를 보고 말했다.

바다! 바다! 조개! 늌뉴!

그건, 정말 조개였다. 이 계곡에 조개가 있다는 것도 믿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조개야. 인어의 눈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맞아. 이건, 조개야.

인어는 한참 동안 나를 보다 얼른 돌아 계곡물에 몸을 맡겼다. 한참을 빠른 물살을 가르던 인어가 지느러미를 들어 올리고 몇 번 허공을 갈랐다. 나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인어가 준 자그마한 바다를 손에 들고 있던 나는 같이 인사를 건넸다. 잘 가. 너도 언젠가는 바다로 가겠구나. 연못이 아니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잘 가. 나는 잘리겠지만, 너는 바다로 돌아가. 바다. 그것은 인어가 준 작은 바다.

나는 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