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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첫문장] 갑자기, 슈팅스타

by ___hashi___ 2020. 5. 1.

별이 터졌다.

나는 베스킨라빈스에서 슈팅스타를 먹고 있었다. 친구들은 촌스럽게 슈팅스타가 뭐냐고 쏘아댔지만 나는 슈팅스타가 여전히 좋았다.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쪽팔리게도 초등학생 때 먹었던 슈팅스타가 여전히 나에게는 최고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슈팅스타의 알갱이가 입 안에서 폭죽을 터뜨리던 그때, 가게에 틀어 놓은 티브이에서는 초신성이 폭발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뭐야. 베스킨라빈스에서 뉴스를 틀어 놓는다고? 차라리 아이스크림 광고를 하거나 음악이 끝도 없이 나오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재미없이 굳은 얼굴로 뉴스를 지켜보고 있는 여자 사장님 때문에 얼른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별이 터지고 내 입 안의 슈팅스타 알갱이가 터지고 있는 그때, 재희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 헤어지자.

별이 터지고 슈팅스타 알갱이가 터지고, 나는, 멘탈마저 터지기 시작했다. 껍질이 딱딱한 호두가 콰직 하고 터져버리듯이. 나는 잠깐 멍하니 손에 거의 다 핥아먹은 슈팅스타 콘을 든 채로 재희의 눈을 바라보았다. 재희는 내 눈은 보지도 않고 얼른 체리 쥬빌레를 핥아먹었다.

왜? 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그래?

사장님에게는 들리지 않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게다가 우리 테이블 옆에는 혼자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우리 또래의 애도 있었다. 재희와 나는 게이라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기 위해 참 많은 애를 써왔다. 데이트도 일부러 밖에서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오늘도 겨우 용기를 내 데이트를 하러 온 건데, 뭐? 헤어지자고?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도 이 새끼랑은 헤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재희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이유를 말했다.

나, 입학하는 고등학교 말이야. 천주교 재단이야.

... 근데? 그게 왜?

천주교? 속으로 천주교가 뭔지 좀 생각해봤다. 교회? 교회인가? 교회랑 다른가? 하여간 뭐, 다닌다는 거 아니야? 종교랑은 등을 진 내가 천주교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재희 이 새끼는 다니는 교회 없는데? 거의 다 먹은 체리 쥬빌레 콘을 손에 들고 있던 재희는 콘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건 말이야... 성당이라고 생각하면 돼. 성당은 동성애를 하면 안 돼.

... 근데? 너 성당 안 다니잖아.

이제 다닐 거야.

미친놈. 나는 거르지도 않고 저절로 욕을 뱉었다. 정말, 미친놈이다. 갑자기? 나랑 헤어지고 성당인지 뭔지를 다니겠다고? 왜? 여자 사장은 여전히 초신성 폭발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었고 우리 옆 테이블의 안경잡이는 핸드폰 게임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너, 알지? 얼마 전에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잖아. 할머니는 성당을 다니셨거든. 나는 속으로 하느님 욕을 했어. 아무리 할머니가 기도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할머니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셨는데 왜 할머니가 자꾸 아픈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런데 말이야, 할머니는 성당에 간 일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셨대. 할머니는 신에게 기도를 할 수 있어서 기쁘셨대. 그래서 나도 성당을 다녀 보려고.

그렇게 말하자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재희 새끼는 진지했다. 정말 진지하게 체리 쥬빌레 콘을 다 먹었고 정말 진지하게, 그 큰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진지하게 성당을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랑 헤어지기 싫어했다.

병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수가 없다. 저렇게 말하는데, 나를 좋아하는 건 여전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내가 양보해야지. 할머니랑 하느님한테. 먼저 나가려고 했지만 나는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하나 더 먹고 싶어 져 자리에 다시 앉아버렸다. 대신 재희에게 멋있게 말했다.

알았어. 잘 가.

미안해.

진짜, 병신새끼. 왜 울지? 재희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얼른 가게를 떠나 버렸다. 나쁜새끼. 하. 그래도 울지 않아서 다행이다. 울면 쪽팔릴 뻔했어. 가게 사장님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뉴스를 보았다. 뉴스 패널들은 서로 별의 일생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다 쓸데없는 말을. 눈물이 나오려는 눈가를 비비고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패널로 앉아 있는 과학자의 말 때문에 조금 더 뉴스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말입니다. 별의 일생이 끝났다고 볼 수 있는 초신성 폭발이 있기 때문에 별이 태어날 수 있는 겁니다.

네? 별이 죽었는데 다시 별이 태어난다고요?

깔끔한 정장을 입은 잘생긴 아나운서가 멍청하게 물었다. 뭐. 다 짜고 치는 대사야. 아나운서에 비하면 전혀 정리하지 않은 머리를 그대로 두고 구색만 겨우 맞춘 정장을 입은 나이 든 과학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초신성은 폭발할 때 여러 물질을 방출하죠. 가스, 기체, 먼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전문적으로는 ‘성간물질’이라고 부르죠. 별이 죽을 때 방출하는 성간물질로부터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별이 죽고 나서야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문학적인 비유 같습니다.

많은 과학이 문학과 비슷하죠.

저게 무슨 개소리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뉴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별이 터져도 다시 태어난다는 뭐 그런 말이지...?

나 왜, 용기 없이, 재희새끼를 붙잡지 못했을까? 고백도 재희새끼가 먼저 했잖아.

잠깐 더 뉴스를 지켜보았다. 이제 초신성이 아닌 날씨 예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 더 뉴스를 보다 핸드폰을 열었다. 성간물질.

재희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