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13 판의 인장 남자는 편지를 받았다. 잠깐 스친 두꺼운 손가락 마디가 불에 데인 듯 뜨거웠다. 남자는 천천히 봉투를 훑어보다 마음먹은 듯 페이퍼 나이프를 꺼냈다. 그냥 씰을 떼기만 해도 될 텐데. 남자는 구태여 나이프로 천천히 봉투의 접힌 부분을 도려냈다. 나이프의 끝이 밝게 빛났다. 나는 말없이 가만히 서서 남자가 편지봉투를 가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초를 녹여 스탬프를 찍는 발송인도 그렇고, 페이퍼 나이프로 편지를 뜯는 수신인도 그렇고. 무슨, 르네상스 시대에서 걸어 나왔나. 그 옛날의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비밀을 배달하는 집배원. 이 일을 시작한지는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물론 초짜다. 그러나 사람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대신 전달하는 일은 그 누구라도 능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2020. 1. 23.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