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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 불온한 새벽의 재회/워드의 춤추는 타자기

[워는타] 잘못 도착한 편지(3)

by ___hashi___ 2020. 6. 28.

#티끌_모아_장편소설 #워드의_춤추는_타자기


헨리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잠깐 눈을 감았다. 눈 위로 밀려오는 잠을 겨우 밀어내며 말했다.

미키. 어쨌든 담연한테 가봐야 할 것 같아. 편지를 주긴 해야겠지. 내가 좀 정신이 든 후에 말이야.

헨리. 얼른 잠 깨. 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 예약한 환자도 있으니 말이지. 밤에 다시 올게. 미키. 헨리랑 같이 갈 수 있겠니?

아뇨! 저 혼자 다녀올게요!

미키의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헨리는 의자에 길게 누워 있다 퍼뜩 일어났다. 그럴 수가. 미키는 아직 어리다. 물론 학교에 갈 나이가 됐지만 어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혼자 그 먼 길을 가겠다고? 헨리가 생각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레녹스도 미키가 혼자 담연에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큰 안경을 고쳐 쓴 미키는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며 힘 있게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이제 많이 컸어요.

레녹스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고, 헨리는 말이 없었다. 미키는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키는 이제 스스로가 거의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마땅히 먼 길도 혼자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헨리는 잠시 미키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말없이 가만히 제 발을 내려다보던 작은 아이. 미키는 여전히 작았지만 많이 크기는 했다. 그러나 미키를 혼자 보낼 수는 없었고 헨리는 대신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헨리를 올려다보는 미키를 향해 헨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다녀오렴. 담연은 생각보다 훨씬 낯도 많이 가리고, 그래 아마 너에게도 낯을 가릴 거야, 겁도 많으니까 잘 달래주렴.

네! 다녀올게요! 아마 곧 있다 갈 것 같아요! 빠르면 좋겠죠?

음... 그래.

헨리?

괜찮아.

헨리는 다시 의자 위에 나자빠졌다. 야외 테이블에는 여름의 빛이 가득했고 더운 열기에 레녹스는 땀을 흘렸다. 미키를 혼자 보낼 수 없다는 초조함 때문에 불안하게 헨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애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있었고 미키는 기쁜 마음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다 다시 앉았다.

어린 미키는 얼른 담연에게 가고 싶었다.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야가 오기 전에 다녀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두 어른에게 자신도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미키가 생각하기에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소아과 의사인 레녹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잘 해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제대로 담연 형에게 편지를 전해줄 수 있을 거야!’

눈을 감고 있던 헨리는 레녹스에게 살짝 손을 뻗었다. 낮은 철제 의자에 기대 놓은 레녹스의 손을 잡자 아직 마치지 못한 마감을 미뤄도 좋을 것 같다는 안일한 생각마저 들었다. 헨리는 걱정이 없었다. 미키를 보내도 될 것이다. 원래 그 나이 또래의 애들이란 원래 무엇이든 혼자 해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그러니 미키를 보내줘도 될 것이다.

어차피 그 뒤를 헨리가 조용히 따라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