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끌_모아_장편소설 #워드의_춤추는_타자기
담연.
자다 일어난 헨리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얇은 담요를 어깨에 걸친 이 중년의 남자는 헝클어진 머리와 다듬지 않은 수염 때문에 불쌍해 보였고 그러나 파랗게 빛나는 눈과 창백한 피부 때문에 유난히 차가워 보였다. 실제로는 차갑지도 못한 사람이었지만.
담연과 헨리는 꽤 먼 거리에 살았다. 그러나 주소에 적혀 있는 몇 개의 표지가 비슷한 탓에 가끔 편지가 바뀔 때가 있었다. 졸린 눈으로 봉투 겉장에 거칠게 휘갈긴 글씨를 살폈다. 아마도 디아나의 것이다. 과연. 헨리는 조금 정신이 들자 발신인에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는 걸 확인했다. 창백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사서. 헨리가 손으로 봉투 글씨를 살짝 만지자 믿을 수 없게도 만년필 잉크가 손에 묻어 나왔다.
‘세상에. 잉크가 다 마르지도 않았다고? 아무리 디아나가 성격이 급하다지만, 이게 말이 되나? 이렇게 빨리 편지가 도착한다고?’
헨리는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을 하며 코 끝에 봉투를 가져갔다. 매캐한 잉크의 냄새 때문에 눈을 찌푸렸다. 헨리 옆에 앉아있던 레녹스는 미키가 서툴게 내린 묽은 커피를 마셨고 헨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미키는 얼른 말했다.
디아나 누나에게서 온 거예요!!
그래. 그렇구나.
잘못 온 것 같아요. 그렇죠?
맞아. 그것도 맞는 말이야.
헨리. 담배는 넣는 게 어때? 미키도 있고, 무엇보다도 난 의사야.
소아과 의사인 레녹스의 말에 헨리는 테이블 위에 습관처럼 올려놓은 담뱃갑을 셔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밝은 아침 빛이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가 일을 하기 시작한 시간이었지만 헨리는 아직 잠이 다 깨지 않았다. 그러나 미키가 그를 흔들어 깨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잘못 도착한 편지를 다시 제 주인에게 가져다주어야 했다.
아저씨! 오늘 호야가 온다고 했어요.
음... 그랬나... 하지만 그 고양이는...
언제나 돌아다니죠. 호야랑 같이 담연이 형에게 가보면 어떨까요?
미키. 내 생각에는 그건 안 될 것 같아.
레녹스 말이 맞아 미키. 담연이는 호야를 좀 무서워하거든.
네? 진짜요? 왜요? 호야는 말도 하고 무늬도 멋진 호랑이 같은 고양이예요!!
아직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한 미키는 담연이 왜 호야를 무서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멋있는 꼬리, 우아한 몸짓, 아름다운 눈, 무엇보다도 맑은 목소리. 미키는 헨리조차도 대답해주지 못하는 많은 질문을 호야에게 쏟아낼 때가 있었고 호야는 칫- 하고 혀를 차며 가장 정확한 대답을 들려줬다.
그러나 그런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는 법이다. 그 예민한 타투이스트 담연은 말하는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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