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QqA3qQMKue
개울물은 원래 넓은 곳으로 가는 법. 빠르게 그의 발을 훑고 지나가는 물살을 바라보던 남자는 발을 빼고 물 밖으로 나왔다. 싸늘한 바람에 몸을 잠깐 움츠렸다. 가을 초입이었다. 푸른 잎이 노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무를 바라보던 남자는 구두를 신었다. 오랜만에 나온 외출이었다. 어느 누구도 데려오지 않은, 혼자만의 외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남자에게도 혼자 있을 시간은 필요했다. 오늘은 잠깐의 변덕이었을 뿐이었지만.
혹시 몰라 가져온 천으로 발끝을 닦았다. 그동안 열심히 관리를 했지만 발에는 지워지지 않은 동상 자국과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쯧.
뜻하지 않게 혀를 찬 남자는 잠깐 품위를 잃었다는 아연함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아무도 없었다.
oops. 실수했군.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 치밀함. 그건 남자가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곧 천하가 눈앞이 아니던가. 남자는 습관처럼 잠깐 머리를 만졌다. 흐트러짐 없었고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좁은 개울물을 빠르게 지나가는 물살을 조금 더 지켜보던 남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입고 온 트렌치코트가 갑갑했지만 코트를 벗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발. 남자는 자신의 발을 부끄럽게 여길 때가 종종 있었다. 악착같이 버텨온 과거가 부끄러운 건 아니었지만 완벽하지 않은 신분이 마음에 걸렸다. 땅을 보고 고개를 숙여야 했던 육 년. 육 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문의 사람으로 인정받았지만 그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치욕이기도 했다. 그 치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발. 아무리 다듬고 정리를 했어도 발만큼은 깨끗한 하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노라고 되뇌이곤 했지만 절대 타인에게 맨발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항상 완벽하고 우아하게.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바닥에서 치열하게 올라온 남자는 언제든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토대를 만들었고, 그는 이제 천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세력을 넓혀가는 친구도 부럽지 않았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 무리한 수를 던지는 동생은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다가오는 가을의 볕이 따뜻하게 남자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남자는 타오르는 호박색의 눈으로 개울물이 사라지는 끝을 바라보았다. 저 물은 언젠가 더 넓은 바다로 향할 것이다. 이 좁고 작은 개울을 흐르고 나면 언젠가...
남자는 자신의 꿈에 비해 세상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넓은 세상은 생각만큼 멀지 않았다. 남자는 가뿐하게 몸을 돌려 산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눈매와 단아한 콧대. 남자는 단아한 얼굴로 따뜻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미남이었고 그러나 남자는 그 이상의 사람이었다. ‘아름답다’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탐욕. 구태여 그 탐욕을 숨기지 않는 담대함. 코트 깃을 세우고, 아무도 없는데도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산을 빠져나갔다. 더 넓은 물로 가는 개울물처럼, 대양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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