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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색깔][주황] 해골씨의 끝나지 않는 왈츠

by ___hashi___ 2020. 4. 10.

https://www.youtube.com/watch?v=Txn5-dKLFHg&list=RDTxn5-dKLFHg&index=1

 

길게 누워있던 해골씨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맞은편의 창문으로 불타는 오렌지 껍질 빛깔의 빛이 방 안으로 비춰 들어왔다. 사납게 내리꽂는 빛. 해골씨는 움직일 때마다 부드득 거리며 맞부딪히는 뼈 소리를 무시하고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언제 처음으로 해골이 되었는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해골씨는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 얼마간 벽 너머의 타오르는 빛을 조금 더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아픈 척 누워 있는다 하더라도 해골을 찾아올 친구는 어차피 없었다. 대신 천진난만한 해골씨는 하얀 뼈마디 위로 흘러드는 주홍색의 빛을 보며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오! 좋았어! 오늘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해골씨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빙그르 한 바퀴 돌았다. 춤을 추는 데 입기에 좋은 옷이 뭐더라? 무도복? 그러니까, 그런 옷은 어떻게 생긴 거였지? 이 집의 주인은 언제 돌아오더라? 해골씨가 점령한 집은 사람이 없었지만 바깥에서 비춰 들어오는 불빛 때문에 썰렁하지는 않았다. 이제 곧 있으면 저 해도 지겠지. 그럼 나는 조금 더 춤을 추다 영화를 하나 보고, 혼자 그루브를 타면 되겠지. 그루브를 타기에 좋은 음악은 뭐가 있을까? 재즈? 오늘은 누구의 재즈를 듣지? 쳇 베이커? 그러면 충분할까? 하지만 아직 저녁을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늦저녁의 빛. 촛불처럼 밝게 빛나는 주황색의 빛이 비치지 않는 벽은 오래전 빛이 바랜 필름 사진처럼 칙칙한 청록색이었다. 갑자기 변덕이 고개를 들어버린 해골씨는 얼른 벽난로 옆의 책장으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책장으로 쓰일 테지만 이 집주인은 책장에 책 대신 CD를 꽂았다. 칸마다 가득 꽂혀 있는 시디를 눈으로 훑어보다 아무거나 하나를 집었다. The Strokes. 해골은 망설임 없이 우아하게 턴을 돌며 시디 플레이어로 다가갔다. 시디를 넣고 가장 끌리는 제목의 트랙에 맞췄다. Call It Fate, Call It Karma. 진득하고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해골은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으드득 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 한 가운데 있는 낮은 원탁 위에는 다 시든 장미가 꽂혀 있는 화병이 있었다. 하얀 도기로 만들어진 목이 긴 화병. 그리고 말라버린 검은 장미. 원래는 붉은 색이지 않았을까?

왜 아무도 오지 않을까?

해골은 벽에 혼자 이 거실에서 일어난 날짜를 세었다. 하루에 하나의 사선을 긋자. 그리고 네 개의 사선을 긋고 나면 마지막은 그 위를 가로지르는 사선 하나. 그렇게 오 일이 지났지. 그리고 지금, 육십 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무도 이 집에 오지 않아. 왜 나를 여기에 가둔 것일까? 왜 나는 혼자 남은 것일까? 왜 내가 매번 혼자 봐야 하는 건 저 타오르는 주황색의 빛인 걸까? 이제 곧 있으면 가물어질 저 주황색의 빛.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강렬하게 해골의 빈 두개골을 비추는 빛. 해골씨는 잠깐 어깨를 떨었다. 왜 아무도 오지 않을까?

해골씨는 얼른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이 앞에 누군가가 있다고 상상을 하자! 그러자 정말 친한 친구 한 명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을 보고 웃으며. 친구 역시 해골인거야. 좋아. 해골씨는 상상 속의 친구와 한 손을 맞잡았다. 다른 손으로는 친구의 허리를 받쳐줬다. 그렇다. 해골씨와 상상 속의 친구씨는 우아하게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 혼자 그루브를 타고 싶지 않았던 해골씨는 빙글빙글 거실의 카펫을 밟으며 혼자 웃었다. 어느새 말라 있는 장미의 꽃잎은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늦저녁, 도시의 먼 지평에서 열렬하게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붉은빛이 가득한 그 방, 해골씨는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우아한 왈츠를 췄다. 영원히 만나지 못할 집주인, 자신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기다리면서.


사진 출처는 주황봇님(@Juhwang_486)

테마 음악은 Call It Fate, Call It K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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