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제 - 14. 버섯집
그것은 너무 작아 현미경 없이는 오래도록 볼 수 없다. 오래 보기에는 눈이 너무 아플 테니까. 그러나 누구라도 그것을 일단 본다면 눈이 아려오다 머리가 아플 때까지도 거기서 눈을 떼지 못 할 것이다.
그것은 작고 아름다운 버섯집이었다.
호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동안 버섯집을 바라보았다. 음. 이건, 버섯이군. 그래. 생긴 건 반박할 여지없이 버섯처럼 생겼어. 낼름. 잠시 입맛을 다셨다. 아무 버섯이나 막 주워 먹으면 탈이 난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나 역시. 탐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음. 차라리 길가에 앉아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 나으려나. 나는 하얀 몸에 길쭉한 호랑이 무늬가 매력이니까 나름 나를 예쁘게 보고 밥을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아니, 가다랑어 포라도 괜찮다.
그러나 가다랑어 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호야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괜히 속이 상해 입맛만 다셨다. 밥 한 번 편하게 얻어먹기 참 힘든 세상이군. 호야는 뻔뻔한 꼬리를 흔들며 버섯집을 바라보았다. 군침이 도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부드러운 앞발로 침을 발라 몇 번 얼굴을 닦았다. 옆눈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음. 하지만, 정말 먹어도 상관없는 걸까? 누가 봐도 이건, 집이잖아. 누가 살고 있나? 호야는 호기심이 동해 천천히 몸을 숙였다. 식빵을 굽는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눈을 크게 뜨자, 뭔가 보이는 게 있었다.
집 안에 작은 애벌레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음. 먹으면 큰일날 뻔했군. 집의 주인인 게 분명한 애벌레는 분주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청소를 했다(하는 것 같았다). 호야는 젠체하기를 그만두고 문을 두드렸다. 집주인이 어떤 놈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똑. 똑. 똑.
작은 버섯을 뭉툭한 앞발로 두드리자니 좀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버섯집은 몇 번 우아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집주인인 애벌레는 그런 진동에 이미 익숙했는지 침착하게 몸을 땅에 붙이고 있다 버섯집에 걸맞게 우아한 동작으로 일어났다. 집 안의 가구들은 떨어지지도, 기울어지거나 쓰러지지도 않았다. 배치를 잘 했나보군. 호야는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애벌레는 곧 머지않아 문을 열고 나왔다. 바쁜 자신을 찾은 방문객이 누구인지 가볍게 짜증을 냈다. 그리고는 쾌활하게 몸을 홱홱 돌렸다. 반드시 범인을 찾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며. 그러다 결국, 보고 만 것이다. 땅에 납작하게 붙어 생활하는 자신과는 너무 다른, 간단하게 자신을 장난감으로 쓸법한 거대한 고양이를. 고양이는 하얀 몸에 까만 줄무늬가 그려진 백호의 축소판이었고, 예쁜 녹색 눈은 시리도록 밝게 빛났다.
내 이름은 호야. 보는 것처럼 고양이다. 이 집이 궁금해서 한 번 두드려봤다.
그러나 정작 호야는 애벌레를 해칠 마음은 눈꼽 만큼도 들지 않았다. 잡아 먹을까 고민했던 마음도 사라진 참이었다. 그냥, 이 상황이 궁금해서 문을 두드려 본 것뿐이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집주인인 애벌레도 쉽게 겁먹는 성격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흠! 내 말 들리시오? 내 말소리가 워낙 작다는 자들이 많아서 그렇소. 나는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소만, 당신한테 내 목소리가 들리면 좋겠군! 당신이 이름을 알려줬으니 나도 이름을 말하겠소. 내 이름은 7이요! 부모가 자식새끼를 워낙 많이 낳았는데, 내가 7번째 자식이었다 하더군. 조금 너무하지 않소? 아무래도 내 부모는 멋들어진 이름을 생각해낼 만큼 똑똑하지는 못 한 모양이요!
안타깝게도 호야에게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서 뭔가 앵얼앵얼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고? 야. 너 목소리 너무 작아. 아니, 애를 써서 말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역시 그래도 목소리가 작은데. 잠시만.
호야는 엉거주춤 낮췄던 몸을 아예 납작하게 땅에 붙이고 귀를 7에게 향했다. 7은 다시 애를 써서 호야의 귓가로 다가가 자기가 누구인지, 이 집을 어떻게 짓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왜 나비가 되기를 포기했는지, 애벌레로 살아가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호야에게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환장할 노릇이구만. 야. 미안한데, 하나도 안 들려. 그냥 갈래.
호야는 재미를 잃은 얼굴을 하고 천천히 일어났다. 7이라는 이름을 가진 애벌레가 다치지 않으려면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었다. 호야는 그 애벌레의 이름이 7이라는 것도 몰랐지만. 7은 천천히 멀어지는 호야의 엉덩이를 보며 되려 입맛을 다셨다. 막 허기가 지는 참이었다. 이번에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 했군. 늘 있던 일이니 익숙해.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배가 고프다는 사실 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7은 버섯집 안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은 호야는 부드러운 앞발로 안개에 젖은 이끼를 밟았다. 안개 속에 잠긴 버섯집의 뒤로 해가 그리는 실루엣이 떠올랐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차갑게 뭉쳐 있던 물방울이 천천히 잎에서 잎으로 떨어졌다. 몇 번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7은 어두운 집에 빛이 잘 들도록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아껴 두었던 나뭇잎 찜을 꺼냈다. 오래도록 들여다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버섯집. 버섯집의 습기가 조금씩 걷히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