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 바다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현명한 길잡이는 잘 보이지도 않는 이 바다를 두고 불길한 물살을 에둘러 가야 좋을 거라 미리 예언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독 이 저주받은 구역만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검은 바다를 제 발로 들어가고 싶어 하겠는가? 그러나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선원들과 빠르게 바다를 횡단하기를 원하는 선장은 끝내 이 바다로 배를 끌고 들어왔다. 제 발로 죽으러 온 것이다.
모든 소리를 삼키는 바다. 입 밖으로 뱉어진 말은 전부 안개처럼 흩어지는 물의 그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이제 어디로 갑니까?’ 였다. 이제 어디로. 그러나 그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리가 죽은 이 바다를 항해한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 날,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마지막 날, 내가 했던 질문은 참 멍청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멈춰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디로든 나아가야 했기 때문에 키를 잡은 것뿐.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을 바다 위에서 견뎌야 했다. 침묵이라는 무거운 짐을 나눠지면서.
이 바다에 들어오던 날, 얼치기 선원들은 답답한 마음에 한 두 마디를 지껄이려 입을 뻐끔뻐끔 댔다. 물속에서 하릴없이 입을 뻐끔대는 예쁜 금붕어들처럼. 선원들의 애달픈 뻐끔거림 이후로 들리는 건 찬바람이 물결을 쓸어내리는 소리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말은 뱉자마자 어김없이 까만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나 혼자 살아남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선원들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했다. 쓸데없이 화를 잘 내는 선원이 제일 먼저 죽었다. 요리사가 죽었다. 마음이 약한 막내가 죽었다. 칼부림은 오래도록 이어졌고, 살아남은 이들은 패배자를 거리낌 없이 바다 밑으로 떨어뜨렸다. 여기는 소리를 삼키는 바다. 바다는 거칠게 시체를 먹어치웠지만, 시체가 사라지는 소리는 누구도 듣지 못했다. 그렇게 끝도 없이 바다에게 시체를 먹이로 던져주고 나자 최후의 먹이로 내가 남게 되었다. 그렇다. 어차피 나 또한 죽을 것이다.
알고 있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식량은 떨어졌고, 여기가 어디인지 방향도 잡을 수 없다. 반드시 도착해야 할 목적지 같은 건 이 바다에 들어올 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 또한 죽을 거라고 쓰지 않았는가.
고백하자면 바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던 날, 모두가 죽을 거라는 희미한 예감이 떠오르기는 했다. 싱싱한 생선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낚싯대를 던지고는 했는데, 그 희망의 대가로 건져 올린 것은 사람의 뼈가 묻힌 장화, 더러워진 옷, 낡고 헤진 가죽끈, 따개비가 붙은 해골 같은 것 따위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낚싯대를 바다에 던져 넣고 말았다. 그러니까 여기는, 이미 죽어 사라진 이들이 영원히 잠든 무덤이었던 것이다. 나라고 그 운명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글은 진혼곡이 될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에 묻힌, 이 배의 선원들과 나를 포함해서 이 바다의 희생양이 된 이들을 위한 진혼곡. 아. 그래. 먼 미래에 여기에 올 이들을 위한 진혼곡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미래의 누군가는 이곳에 도달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대들이 이 지옥을 피해갈 수 있기를! 나는 세이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차라리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미쳐서 이 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싶다. 적어도 세이렌은 아름답지 않은가. 적어도 그것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마물 아닌가. 혼자 살아남은 나는 아름답지도 못 하고 목소리도 낼 수 없다.
하지만 이 글이 어느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하소연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진혼곡은 그만큼의 품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글이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 이제부터 쓰려고 한다. 이 바다에 무엇이 있는지를. 혼자 남은 내가 발견한 것은 세이렌이 아니었다.
레비아탄이라 할 수 있을 법한 거대한 괴물 거인과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혼자 남은 어느 날, 사방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서늘한 감각에 머리가 돌기 시작한 나는 입에 술을 가져다 댔다. 맨 정신으로 버티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근거 없는 감각 때문에. 얼마 남지 않았던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그 끔찍한 느낌은 점차 심해졌다. 마치 누군가 배의 밖에서 물속에 잠겨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면, 술을 마시고 난 이후로는 정체 모를 그 무엇이 내 옆에 앉아서 대놓고 나를 훑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옆에 누가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차라리 마지막에 살아남은 선장에게 설설 기면서라도 그와 함께 남았다면 좋았으련만.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공포 때문에 술에 거하게 취한 채로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루하리 만큼 긴 고요함.
결국 나는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총을 들고 갑판으로 걸어 나왔다. 피 칠갑이 되어 있는 갑판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배를 감싸고 있는 것은 창백한 안개, 물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 모든 게 착각이었나? 그렇다면 드디어 내가 죽을 차례인가? 미쳐서? 미쳐서 죽는다고? 아마 술기운 때문에 평소보다 더 크게 웃어댔을 것이다. 웃음소리 없는 공허한 웃음. 그렇게 한참을 웃어대는데 갑자기 땅이 갈라지는 듯한 진동이 울렸다. 바다에 가라앉은 산맥이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 갑판을 타고 흐르는 진동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파도가 몇 번 높게 치다가, 배 옆에서 갑자기 뭔가 거대한 것이 슬며시 솟아올랐다.
그것은 빨간 피부를 가진 거대한 사람의 얼굴 반쪽이었다. 따개비가 붙어 있는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대머리인 그것은 살짝 미소 지으며 나의 안부를 묻기 위해 올라왔다는 듯, 얼굴만 잠깐 비추고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세상을 가르는 듯한 진동은 그 이후로 시종일관 잠잠했다.
그날 밤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 했던 것 같다. 아니,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배 아래에 그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닷속을 보고 누워서, 배 바로 밑에 누워서, 나와 함께 어디론가를 향해 항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처음 본 다음 날, 맨 정신으로 나가 갑판에서 밑을 내려다보자, 배 밑에서 유유히 배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그것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렇다. 이제 나는 이 바다에 들어온 이들이 누구의 먹이가 되었는지 안다. 그리고 나 또한 저것에게 언젠가 먹힐 운명이다.
이제는 더 쓸 기운이 없다. 이 글을 읽게 될 불운한 형제여, 이 바다에서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 목소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이제 펜을 놓는다. 저것과 씨름하기가 지쳤기 때문이다. 내가 할 것은 간단한 일이다.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는 총에 총탄을 끼우고 갑판으로 나간다. 난간에 서서 입 안에 총구를 들이민다. 그리고, 쏜다. 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형제여. 그대에게 저것과 더 싸우기를 권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으니, 인간이 너무 그립기에, 얼굴도 알지 못 하는 그대에게 내 몫까지의 희망을 남겨두고 싶다. 당신이 그 행운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내가 발견한 이 글은 두서없이 휘갈겼다가 펜으로 찍찍 그은 자국이 있었고, 눈물자국도 있었다. 마음이 급했으리라. 어쨌든, 그의 처지가 부러웠다. 그는 적어도 술은 먹고 떠나지 않았던가. 나를 위해 한 잔이라도 남겨주었다면 이렇게 섭섭하지는 않았을 텐데. 알고 있었다. 내가 죽는 이유는 이 바다에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걸. 그가 쓴 대로, 나는 말하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말하기를 노력해서 뭐 하겠는가. 대신, 이 진혼곡 뒤에 새로운 사람인 내가 등장하여 계속해서 이어지는 진혼곡을 쓸까 하고 고민했다.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미래에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다시 진혼곡을 이어서 써 줄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접을 수밖에 없었다. 술이 너무 고프다. 아. 왜 이 글의 주인공은 술 한 잔 남기지 않고 죽어버린 것인가.
방에서 내다보이는 작은 창문 너머로, 배의 갑판 옆에 그것이 있었다. 얼굴을 반만 내밀고 있는, 대머리에 피부가 붉은, 거대한 그 얼굴이. 따개비가 붙은 눈이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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