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권][조맹덕] 드문 별 아래
https://www.youtube.com/watch?v=9MbpM4Mfj88
이런 씨...
거칠게 전화를 내려놓고 짧게 욕을 씨부렸다. 뭐. 어디,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는 나는 잠깐 짜증을 내다 곧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다. 이번 일은 그냥 넘겨버리자. 못 할 것 없다. 선생들 시켜서 대충 얼버무리면 되지. 괜히 원소놈에게 매달릴 뻔했다. 그 자식이 얼마나 시커먼 속내를 갖고 있는지 모르는 바 아니었으니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 세력을 불리는 중이라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속이 쓰렸다. 술이라도 마시고 잘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연회를 여는 게 아닌 이상, 큰 일이 없는 이상 술은 입에 대지 않는다. 아직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술에 취한 정신머리로는 큰일을 할 수 없다. 싸늘하게 터져 나오는 비웃음을 참지 않은 나는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무겁게 닫혀 있는 커튼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보라색 잉크를 흘린 것 같은 수평선 위에는 약하게 반짝이는 몇 개의 별이 보였다. 곧 있으면 밤이었고 그러나 퇴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침대까지 일거리를 갖고 가야 할 판이니. 팽팽하게 신경이 당겨오는 걸 느꼈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약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머리가 아팠다. 요즘 들어 두통이 심하군. 가끔 느끼는 두통은 점점 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정수리에 대고 누군가 못질을 하는 느낌. 머리끝이 아렸고 가끔 참을 수 없는 현기증을 느낄 때도 있었다. 몸관리를 못했나? 그러나 신경 쓰이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두통이 없는 게 말이 안 될지도 모르지. 이상하게 어깨가 무거웠다. 얇은 셔츠만 입고 있었는데도, 어깨는 자꾸 무겁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밤. 이제 곧 있으면 밤이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밖을 둘러보았다. 불이 꺼진 민가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커피를 내려 먹을까 하다 몸 관리 때문에 참았다. 이제 나는 쉽게 흐트러지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저 끝도 없는 민가의 어둠을 보자니 마음이 이상했다. 사람들은 잠에 들었거나 여기에 없었고 나는, 처음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정말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연민 같은 감정이.
답지 않은 생각이다.
커튼을 치고 자리로 돌아와 결국 커피를 내렸다. 아직 정신이 안 깨어 있군. 단톡방에는 이제 막 퇴근한 선생들의 간단한 연락 몇 개가 도착해 있었고 급하지는 않았지만 잠깐 검토하면 될 일들이었다. 오늘도 야근이겠군. 쌓여 있는 서류를 뒤적이려다 잠깐 아버지 생각을 했다. 그 성질 나쁜 노인네, 뭐 때문에 그렇게 가버렸는지 몰라. 서주... 알고 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혀를 차고 다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젠장, 나아갈 수만 있다면 조금 더 멀리 가도 괜찮을 텐데. 그러기에는 뿌린 씨가 너무 많았다. 고요에 잠긴 민가를 떠올리자 커피가 절로 당겼다.
그렇게 많은 장수들과 책사들이 곁에 있어도 결국 나는 혼자. 커피잔을 내려놓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일을 해야지. 아버지를 떠올리면, 떠나버린 책사를 떠올리면, 창밖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속이 울렁거렸지만 언제까지 연민이라는 감정에 빠져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건 나답지 않기도 하고. 나도 나이가 드는 모양이군.
어두운 시간 위로 작은 별이 반짝였다. 잠깐 가만히 과거를 떠올리던 나는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것, 그래서 놓을 수 없는 것, 결국엔 큰 것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