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모든 기억은 뒤로 넘어가야만 한다
모든 기억은 뒤로 넘어가야만 한다.
하나, 둘, 다시 뒤로 넘기면서 되새겨야만 하지. 왜 언니가 사라져 버렸는지. 멀어지기 시작한 기억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아픈 머리를 감싸 쥐고 벽을 짚으며 주저앉았다. 지금. 언니는 갑자기 하얗게 가루로 변하더니 허공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가루 하나 남지 않고, 갑자기. 어떻게 하란 말이야, 언니? 계속 주저앉은 채로 언니가 서 있던 바닥을 보았다. 걷혀 있는 커튼 뒤에서 창백한 빛이 비쳐 들어왔다. 사라진 언니의 빈자리가 빛으로 밝았다.
언니는 사라지기 전에 “가방 안에.” 라고 말했다. 잘 꾸미지 않는 언니에게 가방은 백팩 하나뿐이었다. 책상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까만 백팩을 바라보았다. 그 흔한 키링, 뱃지, 와펜 하나 달지 않은 깔끔한 가방. 언니. 지금은 열 용기가 나지 않아.
언니는 어제 방에 누워서 담배를 폈다. 처음이었다. 모범생인 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건. 그 전 날에는 쓰고 있던 일기장을 전부 찢어 버렸다. 또 그 전에는 학교를 자퇴했고 또 그 전에는 죽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전에는...
이상한 일이지. 왜 언니는 항상 가까이하려고 할 때마다 나와 점점 더 멀어진 걸까. 언니는 언제부턴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에 겁을 먹는지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겁을 먹었고, 언니에게 너무 많은 말을 했다. 언니! 괜찮아! 언니, 왜 그래? 언니!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몰라.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한들 언니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가방을 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백하고 암담한 방 안에서 나는 울음을 참으며 언니의 가방을 열었다.
사실 언제부턴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언니의 손을 잡을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언니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아득한 간극을 메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던 것 같다. 견디기 힘든 진실은 언제나 가장 먼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가방 안에는 작게 접은 쪽지. 펼치자 보이는 건 날짜. 누렇게 바랜 종이쪽지에 서툰 글씨로 흘려 쓴 글씨.
언니가 죽은 날짜.
기억의 가장 뒤로 넘어가면, 내가 언니를 마지막으로 봤던 날. 몸이 너무 아파서 병상에서 창백하게 굳어 있던 언니의 모습. 죽은 사람의 모습이 그렇게 백합처럼 예쁠 수 있다는 걸 그 날 알았다.
유령으로 내 곁에 남아있던 언니가 사라진 오늘은, 언니가 죽은 지 일 년이 되는 날이다. 언니는, 오늘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지만.
트친님이 주신 연성 소재를 이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