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코드 전력

[장르_전력][발자국] Sacred play secret place

___hashi___ 2020. 3. 4. 00:14

내가 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 그렇다. 그것은 형이 탄 배가 바다를 항해하다 가라앉던 날 깨달은 사실이다. 내가 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다고.

 

아내를 일찍 잃었던 아버지는 혼자서 형제 둘을 키우느라 애를 썼던 것 같다. 젊은 나이에 새 여자에게 마음이 갈 법도 한데, 아버지는 항상 성실한 가장의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교육에 서툰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실수를 했다. 성실해도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니까. 형을 더 예뻐했던 게 그 실수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형은 나보다 똑똑했다. 유치원에서는 항상 좋은 평가를 받았고, 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시험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다. 친구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운동도 잘했다. 게다가 나보다 잘 생기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나보다 형을 더 사랑했던 것은 어머니가 나를 낳다 죽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컸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형을 더 예뻐했던 것뿐이다. 하나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다. 어렸던 우리 형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네에서 제일 큰 장난감 가게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큐브에 빠져 있었다. 잘 맞추지도 못하면서 큐브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다. 알록달록한 색이 예쁘고, 큐브를 돌릴 때마다 바뀌는 모양이, 바뀌는 색이, 너무 놀랍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우리 손을 놓고 하나씩만 장난감을 골라 오라고 말했던 그 날, 설레는 마음으로 길고 좁은 통로를 달리던 내가 큐브를 집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큐브는 내가 가지고 놀던 정육면체 큐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정육면체 모양이 아닌, 피라미드 모양이었던 것이다. 큐브 모양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형은 남자아이들답게 로봇 장난감을 가져왔었고, 나에게는 로봇 같은 건 전혀 멋있지도 대단해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큼 큐브에 빠져 있었으니까.

어린 형과 나는 각자의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형은 로봇을 갖고 놀기에 지쳤는지 나에게 큐브를 빌려달라고 부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빌려줄 법도 했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잠시 가지고 놀고 돌려주겠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평소에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형에게 자격지심을 느낀 나는, 그것마저 뺏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악을 쓰며 큐브를 주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의 엄한 꾸지람에 형에게 큐브를 빌려 주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렸던 내가 자격지심을 느꼈을 정도로 아버지가 형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적어두고 싶었던 것뿐이다. 형은 큐브를 조금 가지고 놀고 나에게 돌려주었다. 착한 형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큐브를 받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혼난 이후로, 내 것을 돌려받을 의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었다. 언제나. 형은 적절한 때에 마땅한 것을 얻었고 나는 눈치를 보며 겨우 하나씩 손에 넣었다. 형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대에 진학했고, 그럭저럭 공부했던 나는 미대에 대한 꿈을 접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사범대에 진학했다.

그 때까지 형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모든 면에서. 아들로서, 형으로서, 학생으로서, 친구로서 가장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그 때까지는.

형이 조개에 빠지게 된 데에는 큰 계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바다로 엠티를 갔던 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던 박물관에서 본 고동. 뿔 고동. 그것은 특별하지도 않은 고동이었다. 막말로 횟집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고동이었다. 형이 가져다준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이 고동에 빠진 걸까. 그런데도 형은 그 고동에 금방 빠져들고 말았다. 나에게 우아한 모습과 아름다운 색을 열심히 설명하던 형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형의 말을 금방 잊고 말았다. 그냥 유난히 마음에 드는 걸 발견했나 보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다시 형은 모범생으로 돌아갈 테니까. 아버지의 바람대로.

그러나 일은 그렇게 간단히 풀리지 않았다. 형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개에 대한 서적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고 알바를 하면서 값비싼 조개껍데기들을 모아댔다. 아예 방을 하나 따로 만들어 형과 조개를 위한 작업실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러나 그 작업실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몰랐다. 당연히도 형은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잘 씻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잘 웃지도 않게 된 것은. 결국 아버지와 형이 처음으로 싸우던 날, 학교로부터 졸업 여부마저 불투명하다는 전화까지 받고 말았다.

형은 더 이상 모범생이 아니었다. 그러나 형과 아버지가 싸우는 일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미대를 포기했지만 대신 미술 교육을 공부했고, 임용을 준비해야 했다. 아버지는 과거를 잊은 사람처럼 나에게 사랑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다. 모범생이었던 형 대신 이제 내가 성공해야 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버거울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러나 형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온갖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새로운 조개 엽서를 들고 오거나 책을 가져오거나 했다. 여전히. 그 불가사의한 작업실에 틀어박혀 남들은 모르는 조개의 학명을 들추어가며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올리거나 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바다로 갔다. 형이 바다로 나가던 날, 아버지는 형과 자식의 연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가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나 무서운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내 말을 할 수 없던 사람이었은이까. 형은 결연한 얼굴로 나에게 두 개의 열쇠를 쥐어주며 말했다.

여기. 이거, 줄게. 금방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아마 찾으려면 오래 걸릴 거야.

뭘 찾으러 가는데?

이 한국에도 희귀한 조개는 있어. 학명은... 아, 아니야. 앵무조개라고 기억하면 돼. 원래는 열대에만 서식하는 데 말이야-

형, 말하는 데 미안하지만, 정말 동해 앞바다에 있는 거야?

그래서 멀리 가야 한다는 거야. 위험하다고 해서 나 혼자 가지만.

형. 그냥 안 가면 안 돼?

빨리 올 수 있도록 할게. 그 은색 열쇠, 작업실 키야. 다른 하나는, 나중에 알려줄게.

처음이었다. 내가 형을 말렸던 것이. 그러나 형은 구태여 떠나버렸고, 그 배는 파도에 잠기고 말았다. 아주 고요하게. 난파된 배는 흔적도 없이 깊은 잠으로 밀려 들어갔고, 형은 우리를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다. 성실했던 그 미소만 남기고.

 

아버지는 형의 작업실을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아플 게 뻔했으니까. 형을 조금 더 제대로 말리지 못했다는 마음 때문에, 주저앉을 것 같았으니까. 대신, 아버지와 나는 금방 나이가 들었고, 서걱거리는 시간 위에서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지는.

 

선생님. 핸드폰 보고 그리면 안 될까요?

뭐?

그리고 싶은 게 있는데, 주변에서 구할 수가 없어서요.

뭔데.

앵무조개요.

숨을 삼키고 잠시 형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 말에. 아주 오랜만에. 형은 스물일곱의 나이에 죽었고, 올해로 형이 죽은 지 십 년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조개를 머릿속에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아니, 일부러 밀어냈다. 형은 내게 있었던 사람이지만 결국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식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앵무조개를 마주하게 되다니. 그리고 싶은 자연물을 가져와서 그리라는 안내에, 앵무조개를 그리고 싶다 말하는 학생을 만날 거라고,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키가 작고 얼굴이 하얀 이 남자애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편이었고, 정말 간절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

안 되나요?

형. 마음속으로 형을 불렀다. 나도 모르게. 이 녀석처럼 간절하게. 형. 어쩌라는 거야. 형. 그 열쇠는 항상 내 가방 속에 있지. 형이 준 열쇠. 아직 열어보지 못 한 작업실의 열쇠. 형. 어쩌라는 거야. 형.

내일 가져다줄게.

네?

앵무조개는 없지만 사진은 많아. 가져다줄게.

작업실의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형. 어쩌라는 거야.

 

무거운 나무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얇은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빛. 빛 아래에 춤추는 먼지의 무리들. 벽에는 빼곡하게 형이 스케치한 조개의 그림과 알아보기도 힘든 학명이 적혀 있었고, 구석 책꽂이에는 바다와 조개에 관한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책상 위에는 어지럽게 놓인 조개 사진들. 형. 머리가 어지러웠다. 토가 나오려는 걸 참으며 엽서를 넣어두었을 법한 상자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책상 밑에 아무렇게나 쌓인 상자. 어떤 종이 상자는 이름도 모를 조개들이 색색으로 빛나며 가득 쌓여 있었고, 어떤 상자는 형이 미처 정리하지 못 한 바다의 생태에 관한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어떤 상자는,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게 뭐지?

그 상자만 유난히 반질거렸다. 좋은 나무로 만든 것 같은데, 이게 뭘까. 상자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형이 건네준 작업실 열쇠에 같이 딸려 있던, 작은 열쇠가 떠올랐다. 금색으로 빛나는, 끝이 둥근 열쇠. 어디에도 맞지 않던 열쇠.

둥근 열쇠를 자물쇠에 집어넣었다. 딸칵.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 무거운 상자 뚜껑을 열자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안에 가득히 들어 있던 것은 큐브들과 두꺼운 노트 한 권이었다.

형. 어쩌라는 거야, 형.

차마 큐브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노트를 펼쳤다. 노트에는, 형이 어릴 때부터 적었던 일기가 쌓여 있었다. 각자 다른 일기장에 썼던 것들을 찢어 붙인 노트.

동생이 큐브 때문에 울었다. 꼭 돌려줘야지.

동생은 큐브를 정말 좋아한다. 언젠가 사과해야지.

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지만 힘을 내야 한다. 아버지가 기대하고 있으니까.

중학교 친구들이 새로운 큐브를 소개해줬다.

친구들은 내가 큐브를 좋아하는 줄 안다. 열심히 큐브를 모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동생이 큐브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큐브를 맞추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 줬다. 동생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걔는 나랑 말을 안 한다.

동생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사진을 치웠다.

엠티에도 큐브를 가져갔다. 그리고, 고동을 봤다. 이건 정말 오래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생에게 말할 용기가 생겼다. 큐브들과 함께 나중에 고동도 좀 줘야지.

동생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나를 혼냈다.

이 방에 지금 혼자 있다. 요즘은 항상 혼자다. 그래도 괜찮다. 좋아하는 게 생겼으니까. 동생한테 얼른 큐브를 줘야 하는데, 말을 걸 용기가 안 난다. 쟤는 너무 말이 없다.

바다로 가야겠다. 앵무조개를 보면 모두들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까.

앵무조개는 동생도 좋아해주지 않을까.

바다로 떠날 것이다.

큐브를 돌려줄 것이다.

일기를 옆으로 치우자 보이는 것은, 한없이 가득 쌓여 있는 큐브. 큐브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색도 다른 큐브들, 그 큐브를 전부 엎어버리자 보이는 것은, 내가 맨 처음으로 줬던, 피라미드 큐브.

형. 어쩌라는 거야. 내가 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형.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며 속으로 혼자 뱉어내는 말. 형. 아주 먼바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바다. 형을 부르던 바다. 우리가 형을 밀어냈던, 그래서 형이 나아갔던, 바다. 그 먼바다. 형. 어쩌라는 거야.

형.

 

그냥 드릴게요.

뭐?

선생님이 주신 앵무조개 엽서 덕분에 잘 그린 그림이니까요.

학교 벼룩장터에 내놓은 녀석의 그림은 멋들어진 수채화였다. 앵무조개를 푸른빛으로 그려낸. 값을 더 쳐서 오만 원에 사겠다니까 그냥 준다는 이 녀석.

아니야. 어떻게 그러냐.

정말이에요.

결국 공짜로 선물을 받고 말았다. 이런 귀한 선물을. 밝게 웃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어쩔 수 없이 그림을 받아 들었다. 녀석이 그린 그림은 죄다, 조개였다. 색색이 빛나고 있는 조개 그림들. 괜히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다 갖고 싶었지만 앵무조개 그림만 받아 왔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바다에 갈 것이다. 아주 먼바다로. 결국 내가 밟는 것은 형의 발자국. 내가 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도 좋아하지 못했던 그가 조개를 좋아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 나와 얘기하고 싶어 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래서 바다에 갈 것이다. 형이 제일 갖고 싶어 했던 이 조개 그림을 들고. 그리고 내가 당신을 그릴 것이다. 기억하고 있는 모습 속의 당신을. 이제 내가 말을 걸어야 할 시간. 당신이 걸어온 발자국을 내가 다시 밟을 테니, 당신이 듣지 못하더라도, 형, 이제 말을 거는 것은 나, 처음으로, 처음으로 아버지를 잊고 내 말을 할 시간, 이제 내 차례. 그 바다에서 만나. 다시.

내가 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